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라곤의 카탈리나 (문단 편집) === 복잡한 이혼 과정 === 이 과정에서 '''무려 7년 간의 지루한 공방이 이루어졌다.''' 유일한 딸 [[메리 1세]]의 신분과 안위를 걱정하여 이혼을 극렬히 거부하는 캐서린과 "나를 왕비로 세워달라"며 닦달하는 앤 불린 사이에 낀 헨리 8세는 완전히 녹초가 됐다. ~~콩가루 집안~~ ~~지가 자초했는데 뭘 어떡함~~ 헨리 8세는 자신에게 직접 찾아와 "혼인무효 신청을 거두어달라"고 간청하는 캐서린한테 "[[수녀원]]에 들어가라"고 했으나,[* 당연하지만 수녀는 독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캐서린은 단호히 거부했다. 캐서린은 자신이 잉글랜드의 왕비가 되는 것은 하느님이 내려주신 운명이라 생각했으며, 왕은 앤 불린이라는 요부의 유혹에 넘어가 죄악에 빠져들었지만 결국은 진정한 아내인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캐서린이 시아버지 [[헨리 7세]]에게 겪었던 냉대를 생각하며, 이것 역시도 그때처럼 하나의 시련이라 생각했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톨릭]]의 구원관은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삼위일체론|삼위일체]] [[야훼|하느님]]이자 [[십자가]] 수난과 [[부활]]을 경험하고 승천한 뒤 재림할 구세주로 믿으며, 세상에 가득한 고난과 시련, 유혹을 견뎌냄으로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캐서린에게 이는 단순히 [[사제]]들의 강론에나 나오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캐서린은 이미 시아버지 [[헨리 7세]]에게 받은 7년간의 냉대라는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바 있었고, 그 대가로써 젊고 남자다운 남편 [[헨리 8세]]와 비록 왕자를 낳진 못했지만 귀여운 딸 [[메리 1세|메리 공주]], 잉글랜드의 왕비라는 영광까지 크나큰 보답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따라서 이혼하자고 발광하는 남편을 보면서 '이 역시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또 하나의 시련일 것이고, 이 시련만 이겨낸다면 더 큰 보답으로 보상받을 것이다' 라고 믿을만한 근거가 있었다. * 그리고 캐서린에게는 이러한 '보상'으로 간절히 원할만한 소망이 있었다. 바로 남편과 자신을 기쁘게 하고 [[튜더 왕조]]의 대를 이어줄 왕자였다.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격감하고 종교적 교리를 너무 깊게 신봉하는 것이 종종 빈축거리가 되기까지 하는 현대에서도 '간절한 소망' 이 있는 사람들이 종교에 매달리는 경우는 흔히 있고, 신앙과 교리 내에서 자신의 소망에 대한 답을 얻은 사람들이 종교에 깊게 심취하는 경우 역시 드물지 않다. 하물며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던 중세~근세 [[유럽]]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즉 남편의 이혼 요구를 거부하고 압력을 견뎌낸 캐서린의 심정은 (남편에 대한 애정과 같은 개인적 감정의 측면 이전에) 현대인으로 치면 '반드시 주가가 폭등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저평가 우량주'를 꼭 쥐고 '당장 집안에 쌀이 떨어지고 애들 학원비가 없는데 그거 싼 값에라도 좀 팔아라'라는 소리를 들으며 '이거 조금만 더 버티면 대박날 텐데 어떻게 지금 파냐'고 버티는 사람의 사고방식과도 비슷했다.[* 만일 캐서린이 기적적으로 임신해서 아들을 낳았다면 아들을 얻기 위해라는 명목으로 [[앤 불린|앤]]과 결혼하려고 한 [[헨리 8세]]는 캐서린과 앤 둘 중 누구를 선택할까? 일단 후계자를 못 낳으니 이혼하자고 발광하는 남편을 입 다물게 하는데 아들 출산만큼 끝장나는 상황도 없다. 더군다나 헨리 8세의 입장에서도 앤 불린이 낳을 왕자는 부계로 하나의 왕가 혈통만 물려받았고, 모계로는 일개 상인 집안의 핏줄이라는, 일국의 왕자 신분으로는 다소 부족한 혈통이 된다. 하지만 만약 캐서린이 왕자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부계와 모계 모두 왕족의 혈통을 이어받아 세 나라(잉글랜드, 아라곤, 카스티야)의 왕실의 후예이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겸 스페인의 국왕 [[카를 5세]]의 사촌이라는 당대의 전 유럽 통틀어 손꼽히게 비범한 혈통의 왕자가 되는 것이다. 특히 당시 개창한 지 얼마 안 된 [[튜더 왕조]]의 입장에서는 비범한 혈통과 정통성을 가진 왕자의 탄생이 왕조의 권위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단이었다. 결국 헨리 8세 입장에서는 캐서린에게서 앞으로 아들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혼+새 장가를 시도한 것이지, 캐서린이 왕자를 낳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대안은 기대하기 힘든 최상의 결과였던 것이다. 따라서 캐서린의 입장에서는 아들만 낳는다면 남편에게 구박받을 이유와 명분도 사라지고 세 번에 걸친 공주(princess)이자 잉글랜드의 왕비이자 차기 왕대비로써 완벽한 권위를 얻게 되어, 자신을 몰아내고 왕비 자리를 차지하려는 여자도 "죽기 싫으면 내 눈앞에서 꺼져^^"라는 한 마디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니 이에 매달리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것. 바람둥이에 약삭 빠른 헨리 8세도 캐서린이 왕자만 낳았다면 아무리 앤에게 눈이 멀더라도 왕비로서 완벽하고 배경 빵빵한 캐서린을 버릴 생각은 못 했겠지만, 끝내 캐서린이 아들을 못 낳고 생산력이 떨어지자 자신이 구상한 대안을 실행할 수 있었다.] 아무튼 캐서린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이모로서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앤 불린]]을 [[이단]]으로 생각했기에, 앤이 왕비가 된다면 헨리 8세도 이단에 빠져들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이 사건이 [[성공회]]가 생기는 것에 영향을 끼쳤기에, 캐서린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왕비 지위에서 물러나면 사랑하는 외동딸이자 왕위 후계자인 [[메리 1세]]의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만약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결혼이 적법한 것이 아니었다면, 대 에스파냐의 왕녀이자 잉글랜드의 왕비였던 자신이 [[헨리 8세]]와의 사이에서 낳은 [[메리 1세|메리 공주]]는 일개 [[사생아]]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닌가? 과거에 캐서린은 아서가 죽은 후 7년이나 시아버지의 냉대를 버텼는데, 하느님은 그녀의 인내에 헨리 8세와의 결혼으로 보답하지 않았던가? 당연히 캐서린은 굽힐 생각이 없었다. 한편 헨리는 그저 순종적이라고만 생각했던 아내가 의외로 강하게 이혼을 거부하며 버티자, 오히려 대단히 화를 내며 그녀를 증오하게 된다. ~~니가 잘못한 거잖아~~ 특히 헨리 8세는 그녀의 얼굴조차 보지 않다가 나중에 가서는 근위병들을 시켜 궁정에서 강제로 내쫓아 버리고, 메리가 어머니인 캐서린과 만나는 것조차 막았으며, 앤에게 주기 위하여 캐서린이 지니고 있던 왕가의 보석들도 강제로 빼앗는 것도 모자라 캐서린과 메리 모녀가 편지로 교류하는 것조차 금지시켜버리는 악행까지 저질렀다. [[교황청]]에서는 헨리 8세의 요청을 들어줄 듯 하다가, 결국 캐서린의 조카인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압박에 굴복하여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결혼은 적법하다고 선언해버렸다. 그러자 헨리 8세는 잉글랜드 국교회([[성공회]])를 설립함으로써 교황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자신이 잉글랜드 국교회의 수장이 되는 강수를 두면서 캐서린과의 혼인을 무효화하며 캐서린을 정식으로 왕비에서 폐위시켰다. 이 과정에서 [[토머스 울지]]가 몰락하고, [[토머스 크롬웰]]이 왕의 오른팔로 떠올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